10년차 카피라이터가 붙잡은 삶의 순간들
카피라이터로 성실한 삶을 살고 있는 작가는 어느 날 도서관 구석에서 김화영의 '행복의 충격'을 발견하고 거기서 70년대 작가가 프랑스 남부 엑상프로방스에 유학을 가서 쓴 책을 읽게 된다. 그 뒤 그녀를 프랑스 남부에 대한 로망에 불을 지핀 카뮈의 '결혼, 여름' 이라는 책이었다. 문장의 아름다움 뿐 아니라 구체적인 가르침을 준 그 책은 언젠가 프랑스로 떠나기 위해 지금을 잘근잘근 씹어 견디는 그녀에게,,, 반칙이었다고 한다.
6년을 매일 회사를 가면서, 그 6년을 매일 같이 회사에 가기 싫었던 그녀에게 프랑스 남부는 희망이었다. 그렇게 프랑스 남부에 가기 위해 이런 저런 준비를 하며 주변인은 물론 회사 팀장님에게도 일 년 후에 저는 여기에 없다고 호언장담 했는데 결국 그녀는 결국 회사 팀장님의 만류에 3주 반 이라는 기간의 휴가를 얻고 지중해로 떠난다. 그 기간을 모두 지중해에 쏟아부어 엑상프로방스와 파리와 아를과 니스로 떠났다. 결국 그녀는 그만두지 않았고 머물기로 결정한 것이다.
모든 요일의 기록 중
산다는 것은 어짜피 선택의 연속이다.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모든 선택에는 '만약'이 남는다.
오늘 점심 메뉴부터 시작해서 인생의 큰 결정까지. '만약'이 배제된 순간은 없다. 하지만 '만약'은 어디까지나 '만약'이다. 가보지 않았기에 알지 못하고, 선택하지 않았기에 미련만 가득한 단어이다.
그 모든 '만약'에 대한 답은 하나뿐이다.
'나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라는 답
나는 지중해로 떠나 버린 나의 그 만약을 알지 못한다. 좋았을 것이라고, 상상보다 행복했을 것이라고, 다만 짐작할 뿐이다.
거기에 다녀온 나도 꽤 괜찮았을 것이라고 믿어볼 뿐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도, 그 모든 선택의 결과물인 나도 꽤 괜찮다고 생각한다.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그 선택들이니까.
새삼스럽게, 이삿짐을 앞에 두고 후회한 것은 아니었다. 결혼식을 앞두고 미련이 남은 것도 아니었다. 후회와 미련은 나의 단어가 아니다. 다만 내 삶이 내가 선택한 것과는 다른 길로 멀리 펼쳐져 있음을 깨달았을 뿐이다. 그 길이 어떨지, 선택하지 않은 그 길은 또 어떨지, 나는 결코 알지 못한다. 다만 충실히 뚜벅뚜벅 걸어갈 뿐이다.
물론 육체의 지중해는 지금도 여전히 나를 유혹한다. 끊임없이 그곳으로 오라 손짓한다. 반면에 정신의 지중해는 나를 지금 이곳에 살게 한다. 내 마음가짐에 따라 이곳이 지중해가 될 수 있음을 알게한다. 바람이 불고, 달이 뜨고, 낙엽이 지고, 겨울이 오고, 다시 봄이 오고, 그 모든 아름다움이 지금 여기에 있다.
지금, 여기가, 나의 지중해다.
봄이 어디 있는지 짚신이 닳도록 돌아다녔지만, 돌아와보니 봄은 우리집 매화나무 가지에 걸려있었다.
배움에 대한 작가의 끊임없는 갈구는 쉬늘 날엔 하루에 90%를 침대에 붙어 보내는 게으른 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배우다
나는 내가 강백호 같은 사람이면 좋겠다. 강백호에게 농구를 잘할 수 밖에 없었던 기본기가 있었던 것처럼, 나에게 인생을 잘 살 수밖에 없는 기본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다.
그 기본기를 키우기 위해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사진을 찍고, 여행을 다니고, 뭔가 끊임없이 하고 있다. 그렇게 비옥하게 가꿔진 토양이 있어야 회사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도 내고, 새로운 카피도 쓰고, 새로운 뭔가도 시도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내가 비옥한 토양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여기에서 어떤 나무가 자라날지는 모르겠지만 그 나무가 튼튼했으면,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물론 이미 카피라이터라는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그 나무를 튼튼하게 키우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그 나무가 나의 마지막 나무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는 법이니까. 또 어떤 나무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그 나무를 키우기로 결심을 한다면, 잘 키우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리미리 비옥한 토양을 가꿨는데도 아무 나무도 안 자란다면? 그 역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내게 비옥한 토양은 남을테니까.
그 토양을 가꾸는 과정에서 나는 충분히 행복할테니까. 그 토양을 가지고 있다면 도대체 행복하지 않을 도리가 없으니까.
그래서 오늘도 나는 뭔가를 한다. 새로운 것들을 경험한다. 새로운 것들을 배운다. 그리고 행복해한다. 비옥한 토양의 주인이 되어 비옥한 웃음을 짓는다. 나는 알고 있다. 그 땅엔 이미 '나'라는 나무가 자라고 있다는 것을. 그 나무가 행복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그 이상을 바란적이 없다. 그것만으로도 차고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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